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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vention of Yesterday - 역사를 숙고하는 이유쓸맛 101/2020 2020. 7. 23. 22:03
<다시보는 5만년의 역사>는 저자 타밈 안사리가 머리말에 적고 있듯, 서로 무관해 보이는 역사책 세 권을 동시에 읽으면서 재미를 느낀 인류사의 관계 맺음과 관련해 찾아낸 이야기들이다.
간단히 두 가지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오름세를 구가한 중국의 만리장성은 내림세의 로마제국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 12세기 예루살렘이 셀주크 튀르크족에 정복된 사건은 그 몇 세기 전 스칸디나비아반도를 덮친 흉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완전히 별개의 일들로만 보여지는 사건의 뿌리도 절묘하게 거슬러 올라가면 서로 연결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의미를 만들어 내는 이야기의 흐름인 거대 서사 그리고 그 서사가 받아들여지고 다른 부분에 힘을 발휘하는 맥락을 따라 5만년의 빅히스토리를 잘 엮어 볼 수 있는 책이였다.
진나라 시황제는 흉노를 막기위해 초기 왕국들이 세웠던 개개의 방벽을 하나로 이어 만리장성을 세웠다. 기온이 떨어지며 수확량이 줄어들었고 스칸디나비아인들은 더 넓은 세계로 뛰어들었다. 문화적 우주에서 일어난 사건인 역사. 그 역사의 무대를 누비는 등장인물을 "사회적 별자리" 로 설명한 부분이 인상적이였다. 밤하늘에 그려진 이야기들처럼 우리가 보고 아는 모든 대상도 결국은 각자의 마음에 떠올려지는 별자리와 같다고 말한다. 나라, 가족, 학교, 회사, 동호회, 정당, 문명, 종교, 사회 운동 따위는 모두 사회적 별자리로써 저마다의 줄거리와 주제를 가진다. 나는 내가 접하는 사회적 별자리로 이뤄진 소우주에 살고 있는 셈이다.
맞다! 그것이 서사의 힘이다.
수천년에 걸쳐 사람들은 서로 더 밀접하게 연결되었지만, 순조롭고 안정적으로 뒤섞이는 과정은 아니였다.
사회적 별자리가 형성되고 팽창하다가 중첩하고, 그 중첩의 결과로 마찰과 상처와 혼란이 빚어지고, 충돌하는 별자리들이 서로 얽히면서 어떤 서사는 선택되고, 또 어떤 서사는 버려지는 취사선택 끝에 완전히 새로운 개념적 별자리로 등장하는 과정이었다.
여기서 하나의 서사가 다른 서사에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수단은 물리적 무기가 아니라, 의미를 만들어내는 솜씨였다.
올매크인들은 지하 세계의 신을 재규어로 표현했다. 재규어는 훗날 중앙아메리카의 여러 문화의 예술에도 등장했다. 단순히 중앙아메리카가 원래 재규어가 많이 서식하는 곳이었기 때문일까? 그것은 적절한 설명이 아니다. 중앙아메리카에는 다양한 종류의 동물로 가득한 곳이엇다. 그런데 왜 재규어가 그처럼 대표적인 상징으로 부각되었을까?
애초에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재규어는 일찌감치 선택되어 대표적 상징에 걸맞은 지위를 누렸다. 모름지기 서사는 그렇게 펼쳐지는 법이다. 일단 낟알 하나가 여물면 새로운 낟알들이 거기에 달라붙는다. 일단 형성된 틀은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판단과 가치관을 좌우한다. - 다시보는 5만 년의 역사, 134p서사의 장악력은 이치에 맞나? 필요한가? 라는 의심이 드는 순간부터 약해지기 시작한다.
외부의 타자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책 <모기> 에는 콜럼버스 교환 이후 대체 노동력을 구하기 위해 아프리카 대륙으로 눈길을 돌리는 부분이 나온다. 노예들은 아라비아와 아프리카 노예무역상들에게 사로잡힌 아프리카인들이었다. 노예제로 몰아넣은 장본인이 다름 아니라 같은 아프리카인들이였던 것이다. 왜 같은 아프리카인들끼리 저렇게 까지 했어야 했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유럽인들과 토착 원주민 모두가 말라리아를 비롯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담배와 설탕, 코코아 등 수익성 좋은 농업 생산을 담당할 대체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로써 아프리카 노예무역은 콜롬버스 교환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 모기, 255p
아프리카 노예무역은 유럽인들과 결탁한 아프리카인들의 참여 의지덕분에 성행했다. 수많은 아프리카인이 모기에 손발이 묶인 유럽인을 대신하여 동료들을 유럽의 노예제로 몰아넣었다. - 모기, 268p<다시보는 5만년의 역사>에서는 노예제는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었으며 노예로 삼을 만한 사람이 생기자 마자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노예로 삼을 만한 사람이란 해당 집단의 구성원 (내부의 '우리')이 아닌 외부의 '타자' 인 것이다. 타자성의 근본적인 기준은 '힘' 이며 패자들을 노예로 삼았던 것이다. 패자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생김새가 어떤지는 상관없었다.
아프리카 노예 무역상들은 자신이 백인과 흑인 간의 다소 획일적인 성격의 전쟁에서 동료 아프리카인들을 배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프리카는 문화가 아니라 대륙이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여러 민족이 살고 있었다. 사하라 사막 이남에 거주하는 아프리카인들에게 피부색은 정체성의 표시가 아니었다. 사하라 이남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의 피부가 검은색이었다. - 다시보는 5만 년의 역사, 379p
아메리카 대륙의 노예제는 '일부 인간은 태생적으로 노예'라는 인종관에 노골적으로 근거한 노예제이기도 했다. 노예 무역을 통해 돈을 버는 유럽인들은 어쩌면 이게 나쁜지 아닌지 조차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2020년 우리는 과연 더 크고 넓은 의미의 '우리'라는 관계를 맺기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글쎄. 맥락에서 활용할 만한 수단을 가지기 보다는 니편내편 편가르기를 하거나 계속되는 인종차별, 경제적 이해관계, 종교 전쟁 등으로 더 많은 '타자'가 생긴건 아닌지 모르겠다. 타밈 안사리의 말대로 지금 '우리'의 별자리나 지금 '타자'가 사는 별자리가 아닌 새로운 별자리를 상상하는 힘이 필요해 보인다.
질문에 따라서 달라진다.
갖가지 중요한 발상과 발명품이 동아시아 쪽에서 서유럽 쪽으로 미끄러지듯 흘러갈 때 발명품들은 유럽에 전파된 뒤 새롭게 거듭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상황에 따라서, 필요에 따라서, 관심에 따라서 독창적인 도구가 꾸준히 개량되고 변주되었던 것이다.
파급효과는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이동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은 어디서나 스스로 편의를 모색하느라 분주하기 마련이다.
출처가 어디든 간에 효과만 있으면 아이디어는 뿌리를 내리고 자랄 것이다.
- <다시보는 5만년의 역사> 134p
화약은 당나라 시대 중국에서 발명되었고 주로 불꽃놀이에 쓰였다. 당시 유럽은 단일한 제국으로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의 많은 국가들과 대등한 전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화약이 유럽에 전해지고, 무기 경쟁 속에서 화기 기술이 급성장했다.
최초의 기계식 시계는 중국의 불교 승려가 발명한 '물'로 움직이는 3층짜리 기계 장치로 추정된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세부 시간에는 관심이 없었다. 농사를 짓기 위해 이듬해의 춘분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궁금했을 뿐이다.
기계식 시계가 무슬림에 전파되었지만 역시나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 곳에서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표지는 기도 시간이었고, 이슬람교 경전에 기도 시간을 '태양'의 위치로 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되레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만들어낸 에너지로 유용한 작업을 수행한다는 발상에 매료되었다. 이 '태엽 장치'는 풍차의 개발로 이어졌다. 이후 유럽에 전해졌고, '추'나 '스프링'으로 움직이는 시계와 '더 작은' 시계로 개량되었다. 시계는 교회의 종탑에 설치되어 특정 지역의 모든 사람이 동일한 시간의 틀에서 다른 사람과 연계될 수 있게 해주었다.
무엇에 관심을 느꼈는가? 어떤 것이 궁금한가? 신경쓰는 우선 사항이 무엇인가? 던지는 질문에 따라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해답의 종류도 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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